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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서투른 끄적임

이런저런 내면적 고찰 (다소 엉뚱한 이야기 포함)

by 늘보고영 2023. 11. 2.


1. 과학적으로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로 끝내기보다는,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유전자에는 생존 본능만이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모든 활동은 유전자의 생명활동을 하라는 명령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따진다면 삶의 의미란 그저 살아남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나 그래서 삶이 무의미하다고만 느낀다면, 자칫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고 무언가를 이뤄볼 의지도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삶을 꾸려가기에 충분치 않다.

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순간순간 깨닫기 위해 살아가겠다. 특정 시점에서 만든 의미가 영구불변하리라 생각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 안의 의미를 더듬어 가면서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최대한 기록하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 



2. 삶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유전적 원인이든, 외부적 요인이든, 삶에는 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넘쳐나곤 한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조차 없는 것도 같다. 특히 기술의 진보가 한세기 가까운 속도로 급증하는, 더는 예측하기 힘든 시대 속에서 깊이 체감하곤 한다.휩쓸릴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바람 앞의 억새처럼 유연할 것인가. 답은 아무도 내려주지 않고 질문만이 메아리쳐왔던 시간들을 뒤로, 나는 아직도 답을 찾고 있다.
어쩌면 고작 살아내는 것이 다일지 모른다. 실수는 어차피 할 것이니 그냥 받아들여, 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고작일지 모른다.

또는 어쩌면 구하려 하지 않았으나 가장 마음에 가까운 정답을 구할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로, 혹은 주어진 일을 해낼 뿐이었는데 의외의 흥미를 찾아 나아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다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지만, 재밌기도 함을 이해한다. 

 

숱한 SF에서처럼 미래를 다 알고, 그 운명이 실체화되는 것을 봐야만 한다면 허무함에 빠져버릴 것이기에.

오히려 나의 현생은 소설보다는 언제나 나은 편이었다. 

 

 

 

3. 자유로워지고 싶다. 

 

거인이 등장하는 모 작품의 주인공처럼, 불현듯 나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안의 가장 큰 가치가 '자유' 구나.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의미에서의 자유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서 부모에게서 완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정신적으로 누구에게도 구속당하지 않으며 오롯이 홀로서고, 그럼에도 사람과의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유대감을 이어나가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신체적으로 건강할 자유, 나를 아끼고 돌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이는 내가 자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이런 우선순위적 가치는 결핍으로부터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핍은 마냥 마이너스가 아닌,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4. 엄마와의 대화

 

사람들은 물리를 공부하다 보면 운명론자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 말할 처지가 못되기에, 그냥 말을 옮겨본다. 

세상에 이유없이 그냥 생겨난 건 없다고 한다. 엔트로피 법칙을 비롯한 물리 현상으로 다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아빠라는 원치 않은 존재를 만난 건 나라는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함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야 할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엄마랑 성인이 된 이후 한 대화 이래 가장 감동받은 듯...)

공부와 연구와 고찰을 좋아하는 엄마의 몇십년(?) 짬밥 끝에 나온 말이니 믿어도 되지 않을까 ㅎ
양자역학과 물리학, 운명론에 대해 아직 내가 제대로 이해하기는 너무 먼 이야기 같다. 

나도 50살은 먹고 나서 생각해보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엄마가 이 말을 그저 위로하기 위해 한 게 아니고, 감정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50년이 넘는 살아냄 안에서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시간들과 연구한 것들을 버무려 그 안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와닿았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주며 누구를 만나 어떤 창조물을 만들어내게 될까.

내 삶은 어떤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될까. 

 

 

 

5. 나의 의식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내 의식에 관한 부분이다.

이런 대화를 하다보면 늘 궁금한 게 나라는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느날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수천만의 인간들 가운데 오로지, 나라는 소녀의 신체 안에서.

그렇게 나는 기억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의 자아를 끊김 없이 유지해왔다. 혹은 성장시켜 왔다. 

나는 왜 나라는 개체 안에서만 의식이 존재하고, 다른 이의 머릿속으로는 옮겨다닐 수 없을까?  (feat. 수많은 영혼체인지 소설과 드라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나일까. 왜 이 몸이었을까? 

나는 왜 태어나야 했을까 라는 의문과 더불어 정말 순수하게, 어떠한 긍/부정/비판적 지점 없이 그저 순수하게 궁금하다. 

 

물론 과학적으로 파고들면 인간의 의식은 시냅스의 화학작용으로부터 생겨난 무언가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자아마저도 그런가? 무수히 많은 생각의 연결고리 끝에서 중첩되는 것들을 엮어서 탄생한, 그런 것이 자아일까?

 

 

 

 

-
한번에 쓴 서투른 헤아림, 그러나 가장 나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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