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다가도 이 책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처음 읽었던 어린 시절부터 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은 독서모임을 통해 모모를 다시 책장에서 꺼낼 계기가 생겨 기뻤다.
시간의 꽃과 모모, 카시오페이아, 호라 박사....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따라갈 생각에 설레였다.
#원형 극장
나도 모모처럼 시간이 많았으면,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시간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으면... 원형극장 터의 거대한 정적 속에 흐르는, 나지막하고 웅장한 음악을.
하지만 나 혼자 시간이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주변도 같이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원형극장을 꿈꾼다. 이야기꾼 기기도, 도로 청소부 베포도, 미장이 니콜라도, 모두가 둘러앉아 이야기를 아주 오래 천천히 나누는 곳.
이제 다시 오지 않을,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먼 옛날을 꿈꾼다. 그런 장소가 다시금 생긴다면.....
울지 않는 카나리아를 노래하게 만든 모모만큼 귀를 기울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맘껏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시리고 아프도록 홀로 떨어져 나와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친구를 비롯한 많은 아픈 청년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야기 공동체의 생성.
모모만큼 잘 듣지도, 기억이 비상하지는 못하나, 적의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만큼은 계속 가지고 가고 싶다. 세상의 풍파에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해도 근거 없이 함부로 남을 재단하고 판단내리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다정함을 잃고 싶지 않다. 최소한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큼은 할 수 있는 한, 다정하고 싶다... 옆사람을 돌아보며 살고 싶다.
# 회색 신사
옛날에는 머리로 이해하고 넘겼던 부분들이 마음으로 와닿는다. 조금씩 사무치게 와닿는 것 같다.
회색 신사의 시가로 인해 오염된 시간을 받은 사람들에게 죽을 병이 들어, 무감정하고 공허한 회색 신사가 된다는 대목에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제 나는 선명하고 절절하게 알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예전만큼 좋아했던 일에 열렬하게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없게 되었다. 의욕이 그만큼 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취미가 좋아했던 흔적, 즉 취향으로만 남았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일까..? 예전만큼 감정일기를 세세하게 쓸 수 없다. 잘 울지 않게 된 것은 번거롭지 않게 된 것이라 좋아해야 하는 걸까? 순간순간 '무감정'한 상태에 젖을 때가 있다. 감정을 죽여야 살아남는 한국 사회에서, 내 안에 매몰되지 말라는 주변의 말에 따라 나는 나를 바꿔가는 중인 걸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낯설고 어색한 변화를, 나는 무어라 정의하지 않고 지켜보는 중이다. 감정이 파도쳐서 좋을 게 없다 생각하고 좋게 넘어가려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뎌져감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공허함'이다.
#시간의 꽃
그 공허함을 해결하기 위한 작중의 요소가 바로 시간의 꽃이다. 회색 신사의 냉기로 죽어있던 시간의 꽃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녹아 들어가 다시금 사람 사이의 온정을 되살린다.
역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시간은 시계와 달력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게 있어 시간의 꽃은 무얼 의미하는가.. 생각해보았다. 내 안의 공허함을 비워내고 온기와 생명력으로 채워주는 것. 그건 결국 "좋아함" 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것. 그게 환상일지라도 붙잡고 싶어하는 것. 관광안내원 기기가 이야기꾼 기롤라모로서 꾸었던 꿈일지라도. 조금이라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일.
두고 온 미련이 그리움이 되어 자꾸 나를 괴롭히기에, 닿을 수 없는 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을 뻗게 된다.
그의 노래를 들을 때에야 나는 잃어버린 내 감정을 되찾음과 동시에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통, 그리고 내가 외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인식으로 인한 고통. 감정을 느낄 때에야 나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이 그리움이 사랑임을 나는 여실히 알고 있다. 생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은 고통임과 동시에 축복임도... 내 안에 베포와 기기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약한 나는 그럼에도 자꾸만 꿈을 꾼다.
그에게로 닿는 꿈을,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그럼에도.. 그래야 내가 내 시간의 꽃을 천천히 되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fin.
오랜만에 이 책을 읽는 순간에 시간의 꽃을 몇 송이 피워낸 기분이다. 모모가 듣는 음악을 나도 함께 들은 기분이다. 정말 행복했다. 삶에는 이런 행복이 꼭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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