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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25 : 서른 세(만 28) 기록

79. 사랑의 형태

by 늘보고영 2025. 4. 3.


이 글은 유튜브 "철학흥신소"님의 영상을 받아적은 글이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전부 받아적었다

 



사랑은 오해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매혹당해서 사랑을 시작한다.
매혹은 정의 불가능하다. 사랑이 시작될 때에는 그 사람이 나에게 "상"으로 다가온다.

상(image) : 끊임없이 떨리고 변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존재자

상은 모호하고 흐릿하기 때문에, 다 파악할 수 없다.
어떻게 해줘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매혹당했기 때문에, 미치겠잖아.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걸로 일단 고정시킨다. 이건가봐, 짜장면을 먹여야겠다. 같이 노래방을 가야겠다.
서로를 알고 싶어하고, 잘해주고 싶어한다.

지각과 표상으로 불완전하지만, 거짓일 수도 있지만, 오해일 수도 있지만,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일단 고정시켜 보는 거지.
그 마음이 계속 가닿아서 아, 이건 아니구나. 아니구나. 아니구나. 하면서 테두리를 계속 잡아가는 거다. 조금씩 흐릿하게나마. 하나의 지각으로 하나의 점을 찍는다. 점선이 굉장히 많아져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사랑의 형상 아닐까.

하지만 사랑은 영영 실선이 되지 못한다.
다만 점선을 가장 촘촘히 박아넣을 수는 있지.
그때 우리는 겨우 끄트머리라도 잡는 거다.
아.. 저 사람 이런 사람이구나. 이었구나.
하지만 결코 확정될 수는 없다.
실선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여백이 남는다.

사랑을 이렇게도 정의할 수 있겠다.
그 여백을 '오해할 용기', '착각할 용기'
이걸 두려워한다면 사랑을 시작할 수 없다.
용기를 내야 한다.

또 우리는 이런 모순 속에도 서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생존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지각과 표상의 세계 속에 있지만, 그게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밖에 없다. 매번 누군가에게 똑같은 정도의 애정을 똑같은 정도의 간격으로 부어줄 수가 없다. 누군가를 챙기다 보면 자연히 누군가는 소외된다. 그는 무관심에 상처입는다.

사랑은 오해로 시작하지만, 오해는 상처를 낳는다.
그 사이에서, 계속되는 긴장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그게 인간이 처한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자 한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였는데, 어느 순간 변해가는 그를 보고 이건 내가 사랑했던 그의 모습이 아닌데. 그런데 사실, 그게 내가 생각한 그의 모습이 맞나?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오해이고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는 거다. 하트 모양의 점선을 그렸는데 사실은 퍼즐 모양이었을 수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은 하트로라도 그를 이해해야 다가갈 수 있다. 사랑이 시작될 수 있었던 거다. 그 순간에는 그래야 했던 거다. 그래서 지각과 표상이 필요할 때는 그걸 갖다 쓰고, 시간이 흘러 그 지각과 표상이 나와 주위 사람들을 상처입힐 때는, 좀 다른 측면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할 때는 내 몸을 움직여서 봐야 한다.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인간은 이동 가능성과 이동 폭이 크니까.
개와 달리, 인간은 다른 인간의 위치에 서 볼 수 있다.
너를 다 알 수 없기에, 온몸을 움직여 너를 알아가려고 노력해볼게.

"너는 모호하고 흐릿해서 결코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의 몸을 움직여 네가 서있는 자리로 가보려는 것. 그렇게 너라는 '상'을 조금씩이라도 더 보려고 애쓰는 것. 지혜와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물질과 기억> - 베르그손 해설서


 

 

 

dark coffee beans heart on the beige knitted texture clos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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