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24 : 스물아홉 살 기록

7. 일기를 다시 써보고 싶어서.

늘보고영 2024. 3. 16. 15:35

며칠만에 블로그를 다시 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문득 다시 일기를 써보고 싶어진다.

 

1. 

그동안은 여러 군데 흩어져서 속마음을 적었다. 아이패드에, 핸드폰에, 종이 다이어리 두권에도.

우울증이 와서, 공개된 곳에 적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다. 

여전히 무슨 일만 있으면 밤에 못 자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일이 없을 때는 밤에 잘 수 있다. 

아침에도 일어난다. 햇볕을 일부러 많이 보려고 나와서 걷는다. 집 근처에 볕을 쬘 수 있는 공원이 있고,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가 있고, 잠깐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가 있고, 배를 쓰다듬으면 골골대는 고양이도 있으며, 들어서는 순간 신비로운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단골카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울증 완화에 분명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나를 예민인이자, 다능인으로 정체화했다.

궁금하신 분들은 HSP & Multipotentialite 에 관한 인터넷 정보가 많으니 알아서 찾아보도록.

지금이 그렇다는 말이다.

언제고 바뀔 수도 있다. 나만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거나, 아예 아무런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고인 물보다는 흐르는 물이라서. 

 

어쨌든, 예민인이자 다능인인 나는 때로 출렁이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렵고, 속에 끓어넘치는 말들을 담아두기가 어렵다. 그럴때는 종종 글을 썼다. 한때는 글을 쓰면서 내가 '과몰입'을 할까봐 아예 펜을 놓은 적도 많다. 하지만 내가 흐르는 물인 만큼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아쉬워서, 요새는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노력한다. 언젠가 자서전으로 쓰일 수도 있으니까.

 

핸드폰을 멀리하는 것도 예민 자아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하이브 마인드 활동 과잉, 이것은 예민인에게 독이 맞다.

자꾸만 트위터를 체크하고 카톡을 체크하며 답이 오지 않았나를 무한반복하고 있는 나를 다스리기에 좋다.

연락이 온다는 사실은 잊고 있어야 한다. 잊고 있다가 들어가야 답이 와있다. 

그때 한번씩 도파민을 꽃피우고, 다시 나라는 잔잔한 수면상태로 돌아와야 한다. 

 

 

 

 

2.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에게 당연한 것 역시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하니까. 

우리를 갈라놓는 사소한 이유들로 놓지 않을 것이다. 

 

관심사가 멀어진다든지, 결국 나는 너와 결이 다름을 알게 되었을 때라든지, 

내게는 말할 수 없는 많은 비밀이 생겨난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게 말해줄 수도 있으니까, 또는 설령 말하지 않는다 해도 잠자코 그저 곁에 있어줄 수 있다.

 

나는 그냥 네가 좋은 거니까.

네가 조금씩 달라져서, 네가 아니게 된다 해도, 그래도 놓지 못할 테니까.

 

나인과 미래와 현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