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오랜 터널을 지나고 있다
왜, 드라마에서 나오잖아.
여주인공은 버스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고, 자기 인생을 돌아보곤 하는.
내가 그렇다. 아니, 내내 버스를 타는 중이다.
버스는 자주 덜컹거리고, 가끔은 뒷차가 와서 박기도 하고.
가끔은 햇살 비추는 강가를 지나가기도 하고,
가끔은 좋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주기도 하고.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터널 속을 나 혼자 지나가고.
나는 내내 몸에 힘을 쭉 빼고 그 버스에 내 몸을 맡긴다.
가다보면 이 버스가 날 어딘가로는 데려다주겠지.
언젠가는 도착하는 거겠지. 하면서.
상태가 많이 안 좋을 때
버스에서 아예 내려버릴 때도 있다.
다시 처음부터 탑승해야 하나? 라는 걱정에 휩싸여서.
버스에 타려면 소정의 금액과, 그 금액이 충전된 카드 혹은 후불카드와,
자리까지 걸어갈 동안 흔들리는 버스를 견딜 다리 힘과,
덜컹거릴 동안 멀미를 견딜 체력과,
목적지 부근이 올 동안 정신차리고 있을 판단력과,
목적지에서 잽싸게 내리는 민첩합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드라마에는 장애인이라도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 과정이 아주 많이 생략되어 있다.
이 모두가 나에게는 쉬운 듯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가 삐걱거린다.
아니, 삐걱거리지 않아도 내 마음은 삐걱거린다.
버스는 고장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고장나기 시작한다.
나는 신경다양인이다. 나라에서 인정해준 장애등급 판정에는 들어가지 않는, 경미한 장애요소를 지니고 살아가는 일반인.
그저 손 주변 살을 피날때까지 물어뜯고, 무슨 일만 생겨도 손과 마음을 덜덜 떨고, 잔걱정에 종종 밤을 지새우고,
조금 큰 소리에 민감하고, 집에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까 늘 조금 긴장상태에 놓여 있고,
어떤 일의 전체적인 모습이 어느정도 파악이 될 때까지는 늘 안심이 되지 않고,
어린 시절엔 도서관의 들쑥날쑥한 책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주려고 했던,
고양이를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나일 것이다.
정상적일 때는, 시끄러운 차소리에도 내가 진정할 수 있는 나무기둥 스크래처와 마루 밑 틈새만 있으면 조금씩 안정을 찾곤 하는.
하지만 그래도 나를 도와줄 좋은 사람들은, 좋은 제도들은 언제나 주변에 있어왔다.
근본적인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옆에 있어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의 보루였다. 그들을 믿고, 나는 조금씩 나아갔고, 그들 역시 나 덕분에 조금씩 나아갔다.
서로가 서로의 보루가 되어주는 관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되어 버스에 탑승해도, 이 터널이 아주 오래 끝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내 삶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
나의 보루들이 존재하는 한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모 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른 의미로, 삶에 대한 의지는 항상 죽음에 대한 의지보다 강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삶은 이 말에 가까울 것 같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부터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고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백상예술대상 수상소감에서도, 김혜자 배우님이 저 말을 한 자 한 자 읊으실 때마다 펑펑 울었다.
나도 저렇게 눈부시게 나이들 수 있을까.
꽃샘추위와 함께 도심 속에서도 움트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들.
한여름 따가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공원, 맨 발을 내디디면 느껴지던 자연 그대로인 흙의 시원함.
가을을 몰고 오는 시원한 바람과 하늘하늘 떨어지는 단풍잎들.
눈 쌓인 도로를 신나게 발자국 찍으며 돌아다니던 고양이들.
내 기억 속 사계절의 모습은 대략 이러하다. 이 모든 걸 나는 누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