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25 : 서른 세(만 28) 기록
105. 위로
늘보고영
2025. 4. 26. 02:47
인문학으로 각성하면 더 이상 위로가 필요없다는 말을 봤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생각해. 물론 인문학을 오래 공부하고 생각하면 고독이 주는 고통에 대해 어느정도 초월하게 되는 면은 있지만, 그래도 사람은 타고나길 연결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야. 연결감이 곧 위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스피노자에게 모든 감정은 자연의 표현이야. 고독이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신(자연)과의 일치감이지. 눈을 감고 외로움을 가만히 느껴봐, 그건 내 안의 자연이 살아숨쉬는 거야. 즉 일치감을 인식할수록 고독은 자유가 되고, 외로움은 사라진다고 보았어.
그런데 24시간 동안 고독을 계속 씹을 순 없잖아🤣
우리에겐 몸과 시간이라는 한계가 존재해. 몸을 움직여 살아가야 하고, 시간이 흐르며 계속 변화하는 존재지. 바쁜 일상 속에서 일치감을 계속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독을 개념만으로 정말 정복할 수 있을까?
위로는 서로 살아있다는 확인이자, 존재 간의 따뜻한 진동이 아닐까?
고독은 순간의 흐름일 수 있지만, 삶은 지속되는 흐름이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관계와 연결을 통해 재탄생돼. 알아도, 알아서 더 외로워질 때,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