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독서

<we> 읽고 속생각 와르르

늘보고영 2025. 1. 21. 17:28



1.
산책에서의 두서없는 망상

혼란스럽고 시린 감각들이 계속 나를 감싸고 맴돈다.
오랜만에 히사이시 조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를 들으니 이 음악을 처음 들었던 때가 더 이상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너무나 달라져버렸다.
아,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19살 쯤이었을 것 같다. 랄라스윗-나의 낡은 오렌지나무를 들으며 느꼈던 감각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그때는 계속해서 더는 오지 않는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시달렸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과거를 그저 과거로 인정하며 자연히 흘러가도록 두는 느낌에 가깝다. 그랬었지.
마치 융의 책에서 말한 자아의 죽음과도 비슷하다. 이전의 감성을 우위로 두고 논리비판을 열등으로 두던 상태에서 벗어나, 둘 모두가 동등하게 삶에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 같다. 삶에는 철학과 내면세계 만큼이나, 실제 외부세계 속에서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모두 받아들인 것에 가깝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매우 다르니. 즉 이전에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미약하고 은은하게 내면에서 경종을 울리던 것에 가깝다면, 지금은 온몸으로 그것을 체현하고 드디어 부딪히기 시작했다라고 느낀다. 그것을 나 스스로가 나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이전의 자아가 죽는 것과 비슷하며,
내 세계에 태양이 새로 뜨는 것만큼이나 매우 큰 변화였나 보다. 이가 와르르 빠지는 꿈에서는, "이빨"의 의미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의 기능, 즉 저작능력. 무언가를 씹는 것. 공격성, 비판력.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어학사전과 과학사전, 기타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봐야할 것 같다.

인생의 황금기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타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하프로만 세상을 살던 사람이 칼을 갈면 어떻게 될까.....(공포 아닙니다 비윱니다) 둘 사이의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내가 이것을 아는 사람과 관계맺고 싶어하고, 아주 절실한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질문을 잘 못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면에 묻는 질문은 많이 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필요한 정보를 묻는 질문을 못 한다.
내면세계의 메타인지는 월등히 뛰어나다고 본다. 어린시절부터 문답해온 전형적인 내향인이었기 때문이다.
( 안타깝게도, 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또래들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잘 안하기에, 내 말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향인끼리는 조심스럽기에 서로 대화가 많지 않다.)
그러나 현실 쪽 메타인지는 덜 발달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른다. 공부에서부터 그랬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질문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나고 나서야, 그게 내가 했어야 하는 질문이구나. 하게 된다...
실무에서도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게 내 열등기능과 연관이 있을까?
아니면 그냥 너무 많은 것을 미리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질문은, 질문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찾아봤어야 하는 부분이지! 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부분은 아직도 스스로에게 채찍을 내려놓지 못한 걸까...🤔



2.
신화에서 상징이 주는 힘은 매우 강력하다.
단 한순간이 아닌, 인생 전반에 있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러하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만둔 현대인들은 자신의 아니마를 사람에게 투사한다. 나의 전남친들이 그러했고, 나 역시 초반에는 그러했다. 로맨틱 러브의 환상이 깨지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 투사를 멈추고 아니마를 내면의 궁전에 데려다놓기란 쉽지 않다. 사랑은 작은 것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인지하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저 눈앞에 남은 것은 자신의 초라한 현실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연애에서 이별이 일어난다. "더는 널 사랑하지 않아" 라는 말 속에 감춰진 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계속해서 상징을 탐구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졸데를 상징적인 아니마 그 자체로 놔두되 외면 세계의 흰 손의 이졸데 역시 현실의 아내로 받아들이고 "친구처럼"함께 가야 한다.

나와는 반대로 계속해서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소홀히 하고, 경험이 내부로 소화되지 않은 채로 살다가는 언젠가는 속에서 영혼이 외면으로까지 올라와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내며 소리칠 것이다. "네가 나를 돌보지 않은 탓이야!!!" 뜻하지 않게 여기저기가 아프고, 속이 꽉 막힌 것 같고. 악몽을 계속 꾸고.
그래 "영혼"이다. 영혼은 실체임이 확실하다.
특정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우리에게 꿈을 통해 경종을 계속해서 울리는 그 영혼이다. 계속해서 왜 살지? 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질문을 던져대는 그 영혼이다. 이 영혼에게 양식을 주어야 한다. 자기만의 답을 계속 내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긴 삶의 언젠가는 실제로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정신은 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