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24 : 스물아홉 살 기록

33. 진지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늘보고영 2024. 12. 6. 07:54



나에게는 "진지병"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긴 이야긴데, 일단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아픈 얘기인데 그래도 스스로가 많이 단단해진 것 같아서 까내보자면 어린 시절 왕따를 종종 겪었다. 더글로리를 떠올리신 분들, 그렇게까진 아닙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성찰과 사색을 즐겨하고, 상상력과 독특한 세계관을 좋아하며, 그에 푹 빠져들었던 나는 주변과 잘 녹아들지 못했다. (매일 밤 나니아 연대기 영어녹음테이프를 듣다 잠들기를 수차례 끝에 부모님이 청력 상한다며... 귀에서 이어폰을 빼주셨던 기억을 갖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참 어린 나이에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고 영악하다. 적어도 자기 세계가 강했던 나로서는 이를 파악하고, 납득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사실 성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주변에 녹아드는 법을 익혔다. 라떼는 은따(은근한 따돌림)라는 말도 있었는데, 요즘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까지만도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내가 하는 독특한 방식의 진지한 이야기에 아무도 공감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때 친구와 나눈 대화 중에 이런 기억이 있다. "스키니진은 왜 스키니진이라고 하는 거지? 의미를 보면 단어가 이상하지 않니? 뼈말라바지 같잖아." 그리고 그 친구는 아마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탐탁잖은 느낌으로 얼버무려 답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런 식으로 본질을 파고드는 대화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그녀는 결국 나와의 관계를 포기하고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 그 친구를 탓하려는 마음은 없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느낌의 겉도는 대화가 학창시절 내내 이어졌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내가 이방인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고, 마침내 그런 방식을 포기했다. 주변에 그저 순응하고, 무던하게 보이려 노력하고, 별 것 아닌 것에도 공감해줬다. 리액션이 커졌다. 그 흔한 무도 예능 한번 투니버스 한번 본 적 없지만 본 것 처럼, 겪은 것처럼 학습해서 대답했다. 스스로를 창피해하며 자기부정했다. 그즈음 사회에서 생갸난 진지병, 진지충이라는 단어가 큰 몫을 했다. 이미 진지함을 가지고 태어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진지한, 진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어쩌면 이때부터 트라우마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어떠한 회피도 포기도 아닌 그냥 타인을 통해 돌아본 자기객관화를 통해 이룬 자기긍정이다.)

그리고 내가 심미안이 발달한 HSP라는 사실을 깨딛고, 그래도 세상에 '16프로나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나는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 많은 힘이 들어도 상관없다. 나는 찾을 것이고 누가 뜯어말려도 결국 내가 찾아낼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왜냐면 나는 이미 너무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들, 연대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불편한 것을 그냥 넘기면 그게 속에 쌓여간다는 걸 아는 사람들. 모든 경험의 의미를 꼭 해석하고 자기 안에서 재해석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 감성적인 사람들. 공감하고 연민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조금씩 연결고리가 생기고 있다. 이게 점점 강해질 것임을, 어쩌면 내가 예상치 못한 방식일지라도 마치 순리대로 흘러갈 것임을 알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이어져 온 나의 조각들은 때로는 아팠지만, 내가 단단한 나로 설 수 있게 나를 도운 아주 멋진 조각들이다.

어쩌면 아주 옛날부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스스로의 존재의의에 대한 질답을 해왔을 텐데, 그에 대한 몇 년 전부터 내려온 결론이 이거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하고 관계 속에서 살고 싶어하며 나도 예외는 아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 나다. 상처받기 싫어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타는. 어쩌란 말이냐 아아 트위스트 추면서 (?) 결론은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물론 지상에 낙원은 없다고, 막상 찾았는데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 구원을 주지 못하더라도 " 다음 방향"을 줄 순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계속해서 내 직감을 다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문이 닫히고 열릴 다음 문을 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진지병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제 삼천포로 빠지는 걸 그냥 즐겨~ 자서전에 낸다면 좀 수정해야겠지)
방금 hsp 영상을 보다가 깨달은 것이다. 내가 진지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린 시절에 그토록 두려워했던 내가 남들과 다를까봐, 내가 영원히 내가 속한 세계에서 이방인일까봐 두려워했던 감정은 드러내보니, 나뿐 아니라 남들도 가진 것이었다. 단지 그 색깔이 개개인마다 완전히 다를 뿐.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굉장히 편해졌다. 다행히 (?) 나에게는 남들보다 좀 더 발달한 센서가 있다. 특유의 초감각+초감정 센서로 인해 나는 조금 더 일찍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을 파악하고 맞춰주는 능력이 있다. 이에 더해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난다. 8년 넘게 이어온 내 베프와도 그런 사이다. 이제는 이걸 나의 광장한 장점이라고 스스로를 북돋여주고, 남들에게 어느정도 과하지 않게 이야기할 만큼 자연스럽게 자기긍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냥,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나는 참 있는 그대로 멋진 사람이라고. 진지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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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제 지식적인 장문글 썼으니
오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해.

나에게는 "진지병 트라우마"가 있다.
아직 극복했는지 잘 모르겠다만, 벗어나려고 노력중이다.
이 얘길 하려면 아픈 개인사를 꺼내야 하는데, 시간이 흘러 나도 많이 단단해졌으니 글로 녹여낼 정도는 되었다 믿는다.

어린 시절 나는 정신적인 성숙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고, 둔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이였다. 나니아 연대기와 오즈의 마법사 등의 판타지가 주는 매력을 일찍이 접하고, 상상력과 독특한 세계관을 좋아하며 일기와 시를 즐겨 썼다. 어느 책의 글귀를 인용하자면, 관찰의 '구심점'이 자기 내부로 향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아무튼 그래서 아이들 사이의 유행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아이돌이나 유행, 연애 이야기엔 관심도 없었다. 더 최악은 '반골 기질'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 뻔한 것에 늘 의문을 갖는 내가 있었다.

(에피소드: 스키니진을 왜 그렇게 불러? 직역하자면 뼈말라 바지인데 이상해. 이 말을 들은 친구의 오묘한 - 답하기 귀찮음과 난해함이 뒤섞인-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ㅋㅋㅋ )

이후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로 올라가며 왕따와 몇 번의 배신을 겪었다. 계속되는 겉도는 대화를 겪으며 타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함에 익숙해질 무렵, 그저 남들처럼 하자고 고분고분해진 내가 있었다. 이때의 나는 스스로를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정체화했다. 그러자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보았다. 세상은 의외로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갈 무렵엔 부모님이 나를 걱정하셨는지 기를 쓰고 외고에 보내버리셨다(ㅋㅋㅋ) 하지만 그곳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같은, "조용하고 공부만 하는 착한 범생이들"의 느낌이라 안심했지만.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드는 친구를 분명 만났으나 유약하고 소심했던 나는 그 별 같은 몇몇과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생이 되고서 상담을 받으며 오랜 세월 내가 홀로 외로움을 감당하며 강해져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즈음 사회에 생겨난 "진지충", "선비질" 이라는 단어가 큰 몫을 했다. 타고나길 예민하고 세심하고 감수성이 발달한 나는 내가 들은 말이 아님에도, 그런 단어 하나에조차 수그러들었다. 혹여 누가 나를 그렇게 볼까봐, 기를 쓰고 전전긍긍했다. 리액션 장인이 되었다. 이때의 나는 "웃음많고 밝은 사람"으로 정체화했다. 타인의 말을 거울삼아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보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인격을 통합해야 할 때가 우울이라는 정신병의 탈을 쓰고 기어이 찾아왔다. 아마 우울이 나를 서서히 좀먹어가던 시절에 만났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든든하게 나를 지탱해주는, 나의 보석같은 친구를. 그 친구 덕에 나는 어린 시절의 "진지했던" 내 모습을 회복했다. 내가 하는 뚱딴지 같은 소리에도 귀기울여주고, 진지하게 고민해주고, 나의 어떤 모습도 받아들여준 소중한 친구를.

그 친구 앞에서 나는 오롯이 그냥 나일 수 있었다.
밝고 유쾌한 장난스러운 나도, 다정하게 답하는 나도, 진지하게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나도, 순간순간 변하는 삶의 주관적 의미를 고찰하는 나도, 우울증 걸린 나도, 푸념하고 돈타령하는 나도 나였다.
아마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했을 것이다. 우울에서 서로를 조금씩 꺼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곁에 있겠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를 시작으로, 조금씩 귀한 관계를 넓혀나갔다.
나조차도 따라잡기 어지러울 정도로 순간순간 급변하는 내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이 정체화해온 내 모습을 모두 통합시키려 노력했고, 마침내 오랜 터널같던 우울에서 빛의 세계로 조금씩 발을 뗐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경험 담긴 이야기를 들었으며, 내가 알던 상식조차도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고, 훨씬 유연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진지병 트라우마"가 아닌 "진지한 나" 로서 당당히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